도체 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요즘 TSMC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이 회사, 정말 교과서처럼 잘 크고 있구나.
TSMC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입니다. 자체 설계는 하지 않고 오직 생산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2023년 전 세계 시가총액 10위, 2026년에는 6위까지 올라섰습니다. 이 정도 위치에 오른 순수 파운드리는 TSMC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경영 원칙, 팹리스 중심으로 재편된 반도체 산업 구조, 그리고 AI라는 초대형 수요가 맞물리면서 TSMC는 지금 가장 완벽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다만, 이 회사에는 실적과 무관한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따라붙습니다. 바로 지정학적 리스크입니다.
역대급 실적으로 증명된 AI 수요의 실체
TSMC는 최근 분기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다시 한 번 경신했습니다.
2025년 4분기 매출은 1조 460억 대만달러를 넘어섰고,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습니다. 순이익은 5,057억 대만달러로 32%나 늘었고, 영업이익률은 54%에 달합니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AI 수요는 여전히 강하고, 아직 꺼질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제 주문과 매출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업 부문을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고성능 컴퓨팅, 이른바 HPC 부문이 전체 매출의 55%를 차지했고, 스마트폰은 32% 수준입니다. 공정별로는 3나노 28%, 5나노 35%, 7나노 14%로 최첨단 공정 중심의 매출 구조가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가이던스가 말해주는 TSMC의 자신감
가이던스를 보면 TSMC의 자신감이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346억~358억 달러로 제시됐는데, 전 분기 대비 증가이자 전년 대비로는 무려 38% 성장입니다.
여기에 비용 구조 개선과 생산 효율성 향상을 통해 총마진을 64%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수요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격 결정권을 여전히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TSMC는 범용 공정부터 3나노, 2나노 같은 최첨단 공정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입니다. 이 덕분에 엔비디아, 애플, AMD, 퀄컴 같은 핵심 고객사들이 계속해서 물량을 맡기고 있습니다.
실적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위치다
그런데도 TSMC를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대만-중국 관계, 즉 지정학적 위기입니다. 이건 경영 실패나 기술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리스크입니다.
실제로 워렌 버핏은 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유로 TSMC 지분을 대거 정리했습니다. 회사의 경쟁력이 아니라, 위치가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TSMC는 대만 경제의 핵심이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심장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 때문에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동시에 긴장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
TSMC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본질
중국은 아직 TSMC 수준의 3나노, 2나노 공정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격차는 단순히 몇 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격차입니다. 그래서 미중 갈등이 심해질수록 TSMC의 전략적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집니다.

만약 중국이 TSMC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의미가 크게 약화될 수 있고, AI·군사·슈퍼컴퓨터 분야에서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선이 대만입니다.
최근 미국의 외교·군사적 행보가 강경해지는 것도, 결국은 국력과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역시 직접 충돌보다는 외교적 프레임과 영향력 확장을 통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실적과 리스크를 동시에 봐야 할 시점
TSMC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회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실적은 완벽에 가깝고, 기술 격차는 쉽게 따라잡히지 않을 수준입니다.
다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회사는 언제나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그림자를 함께 안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TSMC는 단순히 좋은 회사가 아니라, 좋은 회사이지만 판단이 필요한 회사입니다.
이걸 감수하고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ETF나 다른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TSMC를 이해하지 않고는 앞으로의 AI와 반도체 산업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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